뉴욕의 심장 센트럴 파크, 사실은 버려진 황무지였다는 놀라운 이야기

최종 수정일: 2025년 10월 22일

센트럴 파크는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 숲 한가운데에 거대한 녹색 심장처럼 자리 잡고 있죠.

영화나 미드를 보면 주인공들이 로맨틱하게 데이트를 하거나, 조깅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장면의 단골 배경이잖아요? 그래서인지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뉴욕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바로 센트럴 파크입니다.

센트럴 파크 항공샷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땅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맨해튼의 정중앙에 처음부터 공원으로 계획되었던 걸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170여 년 전 이곳은 온갖 바위와 늪으로 뒤덮인 황무지에 가까웠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우리가 사랑하는 뉴욕의 오아시스, 센트럴 파크가 황무지에서 지금의 낙원으로 거듭나기까지의 놀랍고도 뭉클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씩 풀어볼까 합니다.

회색 도시 뉴욕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

이야기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뉴욕은 산업화의 거센 물결과 함께 유럽 등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로 그야말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어요.

하루가 다르게 빽빽하게 들어서는 회색빛 건물들로 도시는 숨 쉴 틈이 없었고, 비좁은 주거 환경과 열악한 위생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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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런던의 하이드 파크나 파리의 불로뉴 숲처럼, 이 삭막하고 답답한 도시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연 속에서 숨 돌릴 수 있는 거대한 공공 공원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죠.

이러한 시민들의 갈망에 불을 지핀 건 당시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었던 윌리엄 컬렌 브라이언트(William Cullen Bryant) 같은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는 “도시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질병과 범죄를 동반한다”며, 자연의 치유력을 통해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공원 건설의 필요성을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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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목소리는 점차 부유한 상인과 지주들에게까지 번져나가며 거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냈어요.

“만약 맨해튼 중심에 거대한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몇 년 후에는 그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

당시에 나왔던 이 한마디는 공원이 단순히 산책이나 하는 유희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사회 기반 시설, 즉 ‘백신’과도 같이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했던 건, 이 공원이 특정 부유층만을 위한 화려한 정원이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비싼 입장료를 낼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와 이민자까지, 뉴욕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평등하게 자연을 누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위대한 열망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황무지를 낙원으로 만들 위대한 설계도의 등장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에 힘입어, 드디어 1857년 뉴욕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원 설계안 현상 공모를 개최합니다. 총 33개의 쟁쟁한 설계안이 경쟁을 펼쳤는데요,

여기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최종 당선된 작품이 바로 조경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건축가 캘버트 보(Calvert Vaux)가 함께 제출한 “그린스워드 계획(Greensward Plan)”이었습니다. ‘녹색의 잔디’라는 이름부터 참 예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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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옴스테드는 조경 분야에 정식으로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된 신예에 가까웠고, 그래서 이들의 당선은 더욱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그들의 설계는 당시 유행하던, 반듯반듯한 직선과 인위적인 대칭을 강조한 프랑스식 정원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국 시골의 자연주의적인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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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계획은 크게 두 가지 혁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어요.

첫째는 ‘자연스러운 풍경의 재현’입니다. 인공적으로 언덕을 만들고,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내고,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아름다운 호수, 연못을 조화롭게 배치해서 방문객들이 맨해튼의 격자무늬 도로에서 벗어나 마치 깊은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죠.

둘째는 지금 봐도 정말 감탄이 나오는 ‘혁신적인 동선 분리’입니다.

공원 안에서 산책하는 사람, 마차를 타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의 길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입체적으로 설계했어요.

특히 공원을 가로지르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맨해튼의 동서를 잇는 주요 도로를 공원 지면보다 낮게 파서 숨겨버리는 ‘가로지르는 길(Transverse Roads)’을 만들었죠.

덕분에 사람들은 차 소음이나 위험의 방해 없이 온전히 자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이 공원에 들어온 순간만큼은 삭막한 도시를 완벽하게 잊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 거대하고 험난했던 여정

하지만 이 위대한 설계도를 현실로 옮기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공원이 들어설 부지는 원래 바위투성이 언덕과 악취 나는 습지가 뒤엉킨, 그야말로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심지어 그곳에는 무허가로 정착해 살던 가난한 이민자들의 마을과 돼지 농장, 쓰레기 처리장까지 난립하고 있었죠.

1858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대역사였습니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온 이민자들이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이들은 다이너마이트보다 더 많은 양의 화약을 터뜨려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들을 깨부수고, 수레 1,000만 개 분량의 흙과 돌을 실어 날라 늪지를 메우고 지형을 다듬었습니다.

황무지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무려 27만 그루가 넘는 나무와 수많은 관목, 꽃들을 심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가시나요?

이 과정에서 가슴 아픈 역사도 존재합니다. 공원 부지 서쪽에는 ‘세네카 빌리지(Seneca Village)’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은 주로 자유 흑인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원 건설이 결정되면서, 이들은 적은 보상금만 받은 채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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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이 숨겨져 있었던 거죠.

숱한 어려움과 예산 문제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계속되었습니다. 15년이라는 정말 기나긴 공사 끝에 1873년, 센트럴 파크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완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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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졌던 황무지를 모든 뉴욕 시민을 위한 푸른 낙원으로 탈바꿈시킨 이 위대한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적인 도시공원의 상징인 센트럴 파크가 마침내 맨해튼의 심장부에 당당히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시민들의 열망이 빚어낸 위대한 유산

센트럴 파크는 단순히 나무와 풀이 많은 아름다운 공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더 나은 삶과 휴식을 꿈꿨던 19세기 뉴욕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꿨던 설계자들의 천재적인 비전, 그리고 이름도 없이 묵묵히 땀 흘렸던 수많은 노동자의 땀방울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위대한 유산이죠.

오늘날까지도 센트럴 파크는 뉴욕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안식처이자, 전 세계인들이 동경하는 뉴욕의 상징으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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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다음에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센트럴 파크의 푸른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이 공원에 깃든 놀랍고도 깊은 이야기를 한번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 평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센트럴 파크 잔디밭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