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슈만 손가락 부상의 진실과 그 후 이야기

최종 수정일: 2025년 11월 03일

슈만 손가락 부상 이야기는 피아노를 가르치며 만나는 수많은 좌절의 순간과 겹쳐 보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손가락이 움직여주지 않을 때, 혹은 진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막막함을 느낄 때 말이죠. ‘재능이 여기까지인가’, ‘포기해야 하나’ 하는 절망적인 질문 앞에서 학생들은 물론이고 가르치는 저 역시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좌절’과 ‘실패’에 관한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를 나눠보려 합니다. 만약 한 젊은이가 자신의 전부를 건 꿈이 산산조각 났다면 어떨까요? 여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입니다.

젊은 시절 로베르트 슈만의 초상화

법학도의 길을 버리고 음악에 모든 것을 걸다

슈만은 사실 처음부터 음악가의 길을 걸을 운명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했죠. 아버지를 일찍 여읜 슈만은 안정적인 법조인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강한 뜻에 따라,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라이프치히 대학 법대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건반 위에 있었습니다. 딱딱한 법전의 논리보다, 자유롭게 펼쳐지는 선율과 화성을 사랑했습니다. 강의실에 앉아있을 때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죠. 그는 법학 공부 대신 문학에 심취하고 철학을 논하며, 무엇보다 피아노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결국, 내면의 불꽃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던 스무 살의 슈만은 어머니에게 폭탄선언을 합니다.

“어머니, 저는 냉철하고 건조한 법학을 도저히 좋아할 수 없습니다. 제 인생을, 저의 모든 것을 음악에 걸겠습니다.”

그의 열정과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는 결국 아들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고, 슈만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였던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의 문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비크는 훗날 슈만의 아내가 되는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 비크의 아버지이기도 했죠.

비크는 슈만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며 “3년 안에 모셸레스나 훔멜(당시 유럽을 주름잡던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을 능가하는 연주자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슈만은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법조인의 길을 스스로 걷어차고,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피아니스트’라는 단 하나의 꿈에 걸었습니다.

꿈을 집어삼킨 치명적인 손가락 부상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은 조바심을 낳았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 그리고 스승인 비크의 딸이자 9살 연하였던 클라라의 천재적인 재능은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슈만은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완벽한 테크닉을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연습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고안한 기계 장치를 사용해 손가락 훈련에 매달렸습니다.

슈만이 사용했던 손가락 교정기(훈련 장치)의 삽화나 복원도

이 장치는 넷째 손가락, 즉 약지를 천장에 매달아 고정하고 나머지 손가락들의 독립성과 힘을 기르려 한 기구였다고 전해집니다.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쳐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4번 손가락은 해부학적으로 독립적인 움직임이 가장 어렵고 약한 손가락입니다. 슈만은 이 ‘지름길’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과도한 연습과 무리한 장치 사용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1831년, 슈만은 자신의 일기에 절망적인 기록을 남깁니다.

“테크닉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오른손이 망가졌다.”

그의 오른손 중지 혹은 넷째 손가락은 마비 증상을 보이며 더 이상 정교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의학적으로는 힘줄(건)의 파열이나 과도한 연습으로 인한 신경 손상, 심지어는 당시 치료에 사용했던 수은 중독이라는 설까지 다양합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다시는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그의 유일했던 꿈이, 바로 그 ‘손가락’ 때문에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은 목소리이자 생명과도 같습니다. 슈만에게 이것은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한때 첼로로 전향할까, 혹은 다시 신학을 공부할까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그의 절망은 깊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찾아낸 새로운 길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는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슈만의 위대함은 바로 이 절망의 순간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무대 위 ‘연주자(Performer)’로서의 길은 막혔지만, ‘음악(Music)’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넘치는 음악적 에너지는 억눌린 채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출구를 찾아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길, 건반 위의 시인이 되다 (작곡)

그는 피아노로 화려하게 ‘연주’할 수 없게 되자, 피아노를 위한 내면의 ‘음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과 고통 속에서 더욱 깊어진 내면의 감정들이 오선지 위에서, 그리고 건반 위에서 폭발했습니다.

이 시기에 《나비 (Papillons, Op. 2)》, 《사육제 (Carnaval, Op. 9)》, 《환상소곡집 (Fantasiestücke, Op. 12)》, 《어린이 정경 (Kinderszenen, Op. 15)》 같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최고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슈만의 '사육제' 악보의 첫 페이지

그의 곡들은 단순히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교적으로는 연주가 불가능해졌기에, 그는 테크닉 너머의 것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슈만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상반된 자아, 즉 격정적이고 열정적인 외향성의 ‘플로레스탄(Florestan)’과 몽상적이고 내향적이며 시적인 ‘오이제비우스(Eusebius)’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이 두 자아가 대화하고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지극히 시적이고 내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두 번째 길, 새로운 음악의 옹호자가 되다 (평론)

슈만의 또 다른 무기는 ‘펜’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손가락으로 연주할 수 없게 되자,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음악계는 기교만 내세우는 공허한 비르투오소 음악이나 상업적인 살롱 음악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슈만은 이러한 ‘저속한 속물들(Philister)’에 맞서 진정성 있고 새로운 예술 음악을 옹호하기 위해, 1834년라는 잡지를 창간합니다.

《음악신보 (Neue Zeitschrift für Musik)》

그는 이 잡지를 통해 당대 음악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쇼팽을 “제군, 모자를 벗어라. 천재가 나타났다!”라는 유명한 말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슈만입니다. 또한, 훗날 혜성처럼 나타난 무명의 청년 요하네스 브람스를 발굴해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기사를 통해 ‘베토벤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시대의 후계자’로 세상에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실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위대함

이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만약 슈만 손가락 부상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없었다면, 그가 성공적으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그는 리스트나 클라라처럼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청중의 환호를 받는 화려한 비르투오소(Virtuoso)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작곡가 슈만’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당대의 수많은 뛰어난 ‘연주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실패’는 그를 연주자에서 창조자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좌절’은 그의 에너지를 밖이 아닌 안으로, 내면으로 향하게 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이고 시적인 피아노곡을 탄생시켰습니다. 손가락이 자유로웠다면 그는 어쩌면 더 화려하고 기교적인 곡을 썼을지도 모르지만, 손가락이 ‘멈추었기에’ 그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목소리, 문학적 상상력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한계’는 그가 펜을 들게 만들어, 쇼팽과 브람스라는 거장을 발굴하고 낭만주의 음악의 방향을 제시하는 위대한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가 되게 했습니다.

슈만의 손가락 부상은 한 개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었지만, 음악사 전체로 보면 ‘위대한 실패’이자 ‘축복받은 전환점’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어떤 문이 닫혔다고 느끼시나요? 혹은 간절히 원했던 꿈이 멀어지는 것 같아 좌절하고 계신가요?

슈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실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때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과 포기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안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멈춰버린 손가락’은 어쩌면, 여러분의 삶에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